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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북송]③정부, 말만 전원수용…대규모 땐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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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슈어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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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3일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개막하면서 중국 내 탈북민은 '벼랑끝' 북송 위기에 내몰렸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경을 봉쇄했던 북한이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재개하면 중국에 구금된 탈북민이 대거 북송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탈북민은 중국에서 인신매매 등 인권유린에 시달리다, 북송 이후 구금과 고문, 처형 위험에 노출된다.
아시아경제는 탈북민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주목하고 북송을 막기 위한 우리 정부의 역할을 모색했다.

정부는 북송이 우려되는 재중 탈북민에 대해 '전원수용 원칙'을 밝혔지만, 대규모 이송에 대비한 계획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강제북송을 밀어붙일 명분을 잃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2000명을 웃도는 인원까지 이송·수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공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말만 '전원수용'…막상 보내면 받을 준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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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통일부·외교부 등에 따르면 중국의 강제송환 방침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국행을 희망하는 모든 탈북민을 '전원수용'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겨냥한 비판 수위를 무작정 높일 경우 자칫 '외교적 간섭'으로 비화할 수 있는 만큼 한국행이라는 대안이 있다고 에둘러 압박하는 셈이다.
이렇듯 정부는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 기조로 대응하고 있다.


북송이 우려되는 재중 탈북민 규모는 2000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전원수용 원칙'에 따라 탈북민을 대규모로 수용할 준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의 적정 수용 인원은 화천분소까지 합쳐 최대 500명이다.
이달 초 입소자 100명을 고려하면 400명도 수용하기 어렵다.


입국 직후 국가정보원 조사를 받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정부합동신문센터)의 동시 수용 인원도 500명에 그친다.
정부 관계자는 "일반 난민과 달리 탈북 배경, 위장 탈북 여부, 대공 용의점 등을 조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현시점에서 수용치를 넘겨 대거 입국한다면 대안이 마땅치 않다. 임시 공간을 마련해도 보안 조사가 가능할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탈북민을 대규모로 이송할 경우 통일부·외교부·국방부·국정원 등이 관여하는 범부처 사안이 된다.
그러나 통일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소집하거나 구체적인 수용 대책을 마련한 것이 있는지' 묻는 태영호 의원 질의에 "탈북민의 신속하고 안전한 입국을 돕고 국민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답변을 갈음했다.


'조용한 외교' 내세우다 '국제적 망신' 당한 盧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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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대규모 이송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고 '조용한 외교'만 밀어붙이면 어떤 부작용이 초래되는지 경험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 1월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CNHR)는 "베트남에 한국행을 기다리는 탈북민 규모가 상당하니 순차적인 이송·수용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지금처럼 '조용한 외교'를 강조하며 움직임을 미뤘다.


그 사이 한국으로 오지 못한 채 베트남에 방치된 탈북민이 늘어나며 적체 현상이 발생했고, 결정적으로 베트남 국경에서 탈북민 7명이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결국 베트남 정부 측이 '탈북민 적체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송을 공개 요구했고, 정부는 뒤늦게 전세기를 띄워 탈북민 468명을 데려왔다.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는 '다른 국가도 아닌 남한이 탈북민을 방치했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제때 담판을 짓지 못한 한국행 협상 과정까지 모두 공개되면서 북한으로부터 "반민족적 납치 테러"라는 반발을 샀다.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한·베트남 외교관계가 훼손됐고, 탈북 루트에 해당하는 동남아 국가들은 탈북민 수용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탈북민이 입국하면 다른 나라처럼 난민 절차가 아닌, 국적 부여가 이뤄진다는 점만 봐도 우리 정부가 구해내야 할 국민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며 "조용한 외교라는 미명 하에 북송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거듭 천명하고 이전 정권들과 차별점으로 내세운 '가치 외교'가 의구심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송 명분 잃도록…"구체적인 수용대책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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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 탈북민의 한국행은 중국 입장에서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와 달리 미·중 패권 경쟁으로 국제적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준비된 한국행'이라는 선택지가 제시되고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한다면, 중국 정부가 '전례없는 인권 재앙'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대규모 북송을 밀어붙일 명분이 없다는 관측이다.


초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지낸 이정훈 통일부 통일미래기획위원장은 "당장 수용시설까지 마련할 필요는 없겠지만, 유사시 인력 등 관계부처 제반사항에 대한 사전 점검은 필요해 보인다"며 "이를 통해 '대규모 이송이 실현될 경우에 대비한 실질적인 준비까지 돼 있다'고 공표한다면, 외교적 충돌을 피하면서도 그 자체로 북송을 저지하는 압박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국제사회는 재중 탈북민의 한국행을 대안으로 꼽고 있다.
'북송 대신 한국행을 선택할 수 있는 제3국으로 길을 열어주라'는 것이다.
지난 6월 미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가 재중 탈북민 문제를 주제로 연 청문회에서도 이 같은 의견이 개진됐으며, 세계 각국의 인권상황을 감시하는 국제앰네스티 등 기구들도 여러 차례 강조해온 대책이다.


태영호 의원은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해선 안 된다"며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강제송환을 저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은 싱하이밍 중국대사를 비롯한 고위급 접촉은 물론, 탈북 경로에 해당하는 동남아 국가들을 직접 방문해 협조를 구할 필요도 있다"고 당부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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