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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정치’가 실종된 이유 [편집인의 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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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슈어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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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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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는 ‘거야’의 법안 단독 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역대 어느 국회보다 여야 충돌이 잦았다.
5월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오늘로서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끝냈습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격려와 성원 덕분에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주민 여러분 곁에서 보내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길을 찾겠습니다.
여러분의 국회의원 000 올림.” “안녕하세요. 언젠간 왔어야할 시간이었고 그저 그 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지난 세월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만을 생각하며 살고자 합니다.
국회의원 00 올림.”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5월29일 이런 내용의 문자들이 이어졌다.
지난 4·10 총선에서 낙선한 21대 국회의원들이다.
역대 국회 대부분 긍정보다는 부정적 평가 속에 막을 내렸지만 21대 국회는 유독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의원 발의 법안 가결률과 같은 입법 성적표 때문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양당 체제가 더욱 확고해졌고 두 당간 ‘협치’는 고사하고 단독 법안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 힘의 충돌이 잦았던 탓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21대 국회의 실패 책임을 ‘거대 야당’ 민주당의 발목잡기에,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독선적 리더십에 떠넘겼다.

문제는 30일부터 시작된 22대 국회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일렬종대 진영에 대화 실종, 정치 사막화에 대립만 반복” 기사(5월27일·김병관·김현우·김나현 기자)는 3당 소신파 의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21대 국회를 평가했다.
22대 국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촉구성 목소리가 담겼다.
공교롭게도 대표적 소신파로 본지와 인터뷰한 의원들은 모두 이번 총선에서 낙선했다.
22대 국회에서 활약할 21대 소신파 의원들은 없을까, 국회 수첩을 훑어봤다.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
여야 모두 ‘소신파’ 딱지가 붙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 됐다.
21대가 ‘최악의 국회’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일테고, 22대 국회에 비관적 전망이 많은 배경일 것이다.


◆‘싸움꾼’만 살아남는 여의도

“국회 대수가 바뀔 때마다 민주당은 투쟁성이 강한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국민의힘은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원이 줄어들며 정치가 실종되는 흐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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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이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21대 국회는 정치가 실종되고 대결 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 심화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해진 의원실 제공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이 본지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조 의원은 그 이유로 계파 공천, 정실 공천을 꼽았다.
당의 안방을 차지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상대당과, 또는 당내에서 다른 계파와 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공천하다보니 ‘싸움꾼’들이 여의도 국회 의사당을 차지하게 됐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도 같은 얘기를 했다.
“대화가 상실됐고 이견과 토론, 합의가 적대시됐다.
정치가 풀 한 포기 나지않는 사막이 됐다.
정치에서 시끄럽게 싸우는 것은 당연하고 그 싸움 덕에 일정한 합의점에 도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계속 싸우기만 하는 것 같다.
” 두 거대 정당이 쟁점 사안에 대해 합의하기 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대통령 권력도, 국회의원 권력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원인이라고 하고, 혹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조국 사태’ 여파가 컸다고 하고, 혹자는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탓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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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토론과 합의가 실종된 21대 국회처럼 22대 국회에서도 여야 싸움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했다.
5월22일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강북구 솔샘역 개찰구에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박용진 의원실 제공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처럼 무엇이 근본 원인이냐를 가르는 건 쉽지 않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300명 의원 가운데 ‘소신’을 꺾지않는 의원들이 있는 것처럼 정치 또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로 정치를 바꾸기는 어렵다.
21대 국회가 보여준대로다.


◆정치 지형 바꾸는 개헌 가능할까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쏟아진 제안은 ‘제왕적 대통령제’ ‘승자독식의 소선구제’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스스로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개헌은 이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의욕을 갖고 현행 선거제도라도 바꾸자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론화 절차를 거치는 등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역시 빈 손으로 끝났다.
의원 개개인이 자신의 지역구, 배지에 대한 기득권을 내놓으려고 하지않기 때문에 선거구제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지역구도 타파를 정치적 소명으로 여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을 향해 권력의 절반을 내놓을테니 선거구제를 바꾸자고 제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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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양극화된 진영 정치에서 소수 정당의 목소리를 끝까지 대변할 것이라고 했다.
최상수 기자
그럼에도 소신파 의원들은 지금의 양당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적대·혐오 정치’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한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양당에 권력이 집중된 구조가 양극단 정치의 한 요인이기 때문에 정당을 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대선거구제, 내각제를 검토해야한다고 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 중임제에 무게를 실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다당제 정치개혁의 제도화 없이 두 개 이상의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대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돕겠다며 만든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의힘, 민주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소신파 의원들이 강조하는 ‘정당의 다양성’ 보장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은 쉽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불씨는 살아있다.
4·10 총선에서 개헌 의석(200석)까지 확보하진 못했지만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이 22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4년 중임제 개헌 군불을 때고 있어서다.
여당 내 일부 의원들의 동조가 필요하다.
최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에서 “4년 중임제를 논의하면서 대통령 임기 단축 얘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대통령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라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저희가 개헌 논의를 할 때는 모든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야당 선동에 동조하는거냐는 내부 반발에 “대통령 흔드는 개헌에는 반대”라고 진화했지만 여당 내부의 미묘한 기류를 가늠케 한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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