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자처한 대한장애인체육회 정진완 회장과 행복한 장애인 체육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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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배우근 기자] 대한장애인체육회 정진완 회장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장애인체육의 ‘롤모델’이라고 자부한다.
장애 후 성공적인 재활 과정을 거쳐 사회의 주요 일원으로 자리매김 했다.
“장애인체육이 나를 사회로 나오게 했다.
몸을 건강하게 해줬다.
사회적 의료비용도 줄였다.
또한 직장인으로 국가에 세금내며 살게 됐고 가족도 부양한다.
가족이 나를 위해 희생하지 않게 됐다”
정 회장은 자신이 걸어온 코스를 다른 장애인 체육인들도 함께 하길 바란다.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다.
중도 장애인으로 체육활동의 긍정효과를 몸소 체험했기에 그렇다.
장애인의 체육활동 보편화가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숙원 사업이라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22살 젊은 나이에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서울올림픽·패럴림픽 1년 전인 1987년이었다.
병실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청년 정진완은 우연히 서울 패럴림픽 유치 기념 휠체어 농구경기를 보게 됐다.
눈이 번쩍 떠졌다.
정진완은 퇴원 후 삼육재활원 휠체어 농구팀을 찾아갔다.
그리고 코트에서 구슬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패럴림픽 출전을 겨냥하며 메달의 꿈을 키웠다.
그런데 휠체어 농구선수로 성공하기엔 체격과 기술에서 밀렸다.
다른 종목으로 눈을 돌렸다.
사격과 양궁이 적성에 맞을거 같았다.
그 중에 사격을 선택했다.
탁월한 결정이었다.
사격팀 감독이 “너는 천부적이다.
무조건 메달 딴다”라며 용기를 심어주었다.
감독의 평가는 정확했다.
정진완은 소총을 들고 3개월만에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국가대표에도 발탁됐다.
잠시, 사격보다 동적인 휠체어 테니스에도 도전했지만 다시 사격에 매진했다.
결국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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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의 승패는 미세한 손가락 감각과 흔들림 없는 어깨에서 갈린다.
정 회장에겐 남들보다 발달한 손가락 감각과 휠체어 농구로 다져진 강한 어깨가 있었다.
정 회장은 선수 시절을 회상하며 사격의 첫번째 특징인 깃털같은 섬세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아쇠를 당기되 당기지 말아야 한다.
“방아쇠가 매우 예민하다.
후~ 불어도 총알이 나갈 정도다.
그 민감도 속에 1단, 2단이 또 있는데, 발사직전 99%의 압력을 짜놓아야 한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총이 흔들리면 안된다.
미스가 나온다.
총알은 자신도 모르게 나가야 한다”
사격 선수로 성공한 정 회장은 은퇴 후 용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행정가로 변신해 대한장애인체육회 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 과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행정경험을 차근차근 쌓으며 이천훈련원 원장을 거쳐 올해 1월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에 당선됐다.
임기는 4년이다.
정 회장의 공약은 인재육성, 제도정비, 재정확보, 전문성 강화 등 다양하다.
무엇보다 선거 슬로건에 기본 철학이 담겨 있다.
‘우리가 가진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 행복한 대한민국 장애인체육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담을 허물수록 건강한 사회가 된다.
정 회장은 임기 동안 공약을 실천하며 그 담을 낮춰야 한다.
헬렌 켈레는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했다.
그 문을 앞장서서 여는게 정 회장의 숙제이며 목표다.
그와 동시에 장애인체육 후배들에게 바람이 있다.
정 회장은 청년시절 사고 이후, 체육활동으로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신을 장애인 체육의 ‘롤모델’이라고 자처한다.
자기 자랑이 아니다.
앞으로 많은 후배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모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그 속에 담겨 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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